2010년 4월 15일 목요일

깎아라, 깎일 것이다

곽공님의 피칼 글을 보다보니 생각이 난 겁니다.
http://clien.career.co.kr/zboard/view.php?id=use&no=10653

또각또각

피칼이란 물건을 처음 본 건 후배가 총가게를 할 때였다. 녀석이 그걸 무슨 용도로 가지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총에 안 쓰고 차에다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구장 알바를 해본 적이 있다면 당구공을 딱는데 피칼을 써봤을 것이다.

피칼은 도대체 무엇인가?

피칼은 1916년 설립되어 1944년 '일본마료공업(日本磨料工業)'이란 회사의 상품명이다. 영어로는 PIKAL이라고 쓰는데 원어로는 ピカ-ル이고 발음은 '삐까루'에 더 가깝다. 어떤 의미에서 만들어진 단어인지 확인이 불가하므로 편한데로 읽을 것.
홈페이지는 http://www.pikal.co.jp 로 들어가보면 우리가 아는 피칼이라도 종류가 꽤 많다.
연마제의 종류도 다양하여 금속, 가구, 유리 등도 되고 차량 관리 용품도 있고 액상의 연마제도 팔고.
가만 보면 다소 특이한 부류인 차량 관리 용품을 빼면 이런 저런 연마제 종류를 상당히 만드는 회사인 셈이다.

저 수많은 종류 중에서도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3가지다.

1. 당구장 : 피칼액, 푸른색 띠로 둘러쌓인 액체 형태의 연마제
2. 꽉꽁옹 : 치약 같이 된 피칼 케어(기본적으로 당구장 용과 동일)
3. 깡통형 : 내가 처음 봤던 것, 피칼네리, 셋 중 가장 뻑뻑하고 힘이 셈

자, 그럼 도대체 피칼은 어떻게 금속이나 당구공의 표면을 삐까뻔쩍하게 만드는 것일까? 이렇게 써놓고 보니 '삐까'가 반짝인다는 일본어인 'ぴかり(삐까리)에서 온 말인데 이게 약간 변형된 건가?
뭐 내가 일본어 전공자도 아니고 더 파고 들어갈 이유도 없고.

피칼을 이해하기 위해서(왜?) '연마'라는 가공 공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해하기 싫음 여기서 이글 접으시고.
연마라 함은 쉽게 생각하면 사포를 가지고 뭔가의 표면을 문지르는 작업이다. 문지르는 목적은 여러가지다.
1. 깍아내려고
2. 거친 표면을 조금이라도 덜 거칠게
3. 표면의 뭔가를 없애려고
4. 거울이 없어서

사포는 종이에다가 적당한 크기의 금속 가루를 접착시켜 놓은 것이다. 이 금속 가루들이 문질러지는 면에다가 '너 나와, 이 쉑히야'라고 소리지르면 표면이 가루처럼 떨어져 나오는 아름다운(?) 광경이다.
사포는 번호로 분류하는데 번호가 클수록 잘 안 갈린다. 번호 크면 힘 쎈 거 아니냐고? 번호는 동일 면적에 있는 연마용 금속 가루들의 숫자로 이해하면 되겠다. 번호가 크면 동일 면적에 더 많은 넘들이 들어가야한다는 건데 크기가 크면 들어가는데 한계가 있잖은가?
100번대의 사포와 1000번대의 사포를 손으로 문질러보면 그 차이는 현격하다. 그렇다고 1000번대의 사포를 무시하지 마라. 마운팅된 시편를 물사포질해본 금속/재료 전공자들...손가락이 피를 철철 흘리고 손톱이 닳아 없어지는 사태를 기억하지 않는가?

연마는 엄밀히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영어로 Grinding과 Polishing. 우리말로는 몰겠다. 공돌이들은 걍 저대로 쓰니까.
위의 4가지 목적으로 볼 때 그라인딩이 1~3, 폴리슁은 4번의 목적이다.
여러종류의 피칼 중에서도 우리가 아는 피칼은 3~4번의 목적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라인딩이 밀리미터나 센티미터 단위로 깍아낸다면 폴리슁은 미크론 단위로 깍아낸다. 내가 시험실에서 하는 마이크로 폴리슁이란 작업은 이론적으로 5미크론 이내를 깍아내도록 되어 있다.

그라인딩은 차라리 쉬운데 거울이 없어서 필요하다는 과연 무슨 뜻일까? 여기까지 흘러오면서도 이해를 못했다면 당신의 상상력은 바닥 수준이다.
요즘은 폰카로 거울을 대신하는 경우도 많은데 뭐 폴리슁까지 해가면서 거울을 만들겠다고. 거기다 쇠로 된 표면을 깍아서 거울 정도로 만들려면 얼마나 시간이 오래 걸리겠는가?

문뜩 생각나는 게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골에 도착한 아들의 차가 너무 더러워 보여 철 수세미로 차를 닦으시는 부모님을 보고 눈물이 나서 같이 철 수세미로 차를 닦아다는 얘기가 생각이 났다.

그라인딩은 쉽게 생각해서 말 그 대로 표면을 깍아낸다. 표면을 깍아내어 매우 거친 표면을 덜 거칠게 하고 표면에 남아있던 지저분함이나 얕은 흠집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럼 폴리슁은? 폴리슁도 미세하게 보면 표면을 깍애내어 거친 표면을 평탄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2번과 동일한 공정이지만 규모는 매우 작다. 그러니까 높이 솟은 부분들을 깍아내어 바닥면과 비슷한 높이로 맞춰주는 것이다.
이걸 조금 어렵게 표면하면 난반사를 줄여 전반사가 되도록 만들어주는 작업이다.

폴리슁은 다시 폴리슁과 버핑(Buffing)으로 나눌 수 있다.
폴리슁은 그라인더 자체에 연마 효과가 있는 것이고 버핑은 그라인더 자체는 연마 효과가 없고 별도의 연마제를 뿌려서 하는 작업이다.
그렇게 되면 내가 하는 폴리슁은 버핑인데 -0ㅡ;;; 우린 폴리슁 패드에 다이아몬드 파우더 뿌려서 하는데 말이다.

모르겠고 꽉꽁옹이 했던 작업도 버핑이다. 부드러운 천에 피칼을 바르고 닦아냈기 때문이다. 근데 뭐 언제 우리가 그렇게 까다롭게 따지고 살았나?

주의할 점은 꽉꽁옹도 지적했지만 깍아낸다는 걸 염주에 두어야한다는 것이다. 양이 많건 적건 깍아낸다는 것이다. 피칼 홈페이지에 보면 몇가지 권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먼저 헤어라인 가공이 들어간 제품에는 권하지 않는다. 민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금속이든 표면에 페인트나 뭔가 처리가 된 것들에도 권하지 않는다. 일부러 준 효과가 못 쓰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속 제품에 피칼질을 하는 이유는 특히 동 제품이나 은 제품들은 오래 되면 표면이 산화되어 지 색깔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뭐 문제라면 피칼질이 끝난 이후에야 번쩍일지 몰라도 좀 지나면 원위치라 계속적인 반복작업이 필요하다는 것.
또, 흠집난 게 아까워 살짝살짝 지울려고 할 수도 있지만 표면은 조금씩 깍아먹는다는 거.

본신발 오래 된 시계 두개가 흠집난 게 아깝지만 하나는 헤어 라인 가공이고, 다른 하나는 샌드 블래스트 가공이라 피칼질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일부러 무광택으로 만들어놓은 표면을 거울로 만들 필요는 없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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